중학교에 입학하고서 이맘때다. 입학성적이 제법 괜찮았다. 외부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됐다. 10만원이었을게다. 궁핍한 시골 살림에는 몇달치 가용이 될만했다. 돈은 부모님 손에 쥐여드릴 수 없었다. 담임교사가 교무실로 불렀다. 워낙 목소리가 낮아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봉투를 건네줘야 하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했다. 당시 왜 따져묻지 못했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기자가 되어 들은 얘기들도 끔찍했다. 촌지를 밝히는 교사는 학부모가 기자라고 저어하지 않았다. 한 동료기자의 담임교사가 아이 편에 와이셔츠를 들려보냈더란다. 빳빳이 다려진 셔츠와 함께 빳빳한 돈 봉투가 담겨오길 기대했을 터이다. 동료는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아내에게 “고민할 게 뭐 있어. 빨아 보내면 되지”라고 했다. 아이 손에는 정성스레 다린 셔츠만이 들렸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30년 전, 10년 전에 갇혀 있었다. 일부 교사의 일탈 사건은 회색 칠을 더욱 두껍게 했다. 아이들 교육을 학원에 떠넘긴 채 학부모가 챙기는 아이들만 예뻐하는 그런 선생님 모습이었다. 요즘 나의 두 아이 담임교사가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뜨려 주고 있다. 인성을 길러주려 애쓰고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 너무 열정적이다.

  얼마 전 초등 4학년 둘째 아들이 학교에서 약봉지를 받아왔다. 어디 아픈 곳이라곤 없는 아이다. 아내가 웃으면서 잘 읽어보라고 했다. ‘따끈한 반 약국’의 이00 약사가 조제한 ‘따뜻한 마음을 지니는 약’이었다. 별, 고리, 캡슐 등 모양의 과자가 들어있었다. 각각에는 ‘00이가 기쁘고 즐거워지는 약’, ‘마음을 자라게 해 주는 약’, ‘자신감을 쑥쑥 키워주는 약’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담임교사가 준 선물이었다. ‘약사’가 ‘환자’에게 당부하는 봉지 뒷면 주의사항은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들에 따르면 선생님은 공부가 처지는 아이들을 더욱 챙긴다. 잘못한 학생을 야단치면서도 좋은 점을 꼭 얘기한다. 학교를 갔다온 아들이 그렇게 말하더란다. “아! 학교 빨리 가고 싶다. 공부도, 노는 것도 재밌다.”

 초등 6학년 큰아들의 담임교사는 학기초 장문의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다. A4 5장 분량의 글에는 ‘참사랑 반’ 설명이 자세하게 들어 있다. 급훈을 소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강조하는 가치관이 설명돼 있다. 일기 쓰기, 책읽기, 복습 등 생활자세에서 학습태도에 이르는 당부의 내용도 담겨 있다. 아내는 지인의 예비교사 딸에게 주겠다면서 간직해 뒀다.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당부만 하는 게 아니다. B4 용지로 ‘내 삶의 하루’라는 생활공책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학생이 매일 알림 사항을 적고 생활을 평가하도록 돼 있다. 운동, 숙제, 인사, 복습 등 15개 항목별로 학생 스스로 점수를 매길 수 있다. 학생과 부모가 1주일을 되돌아 보며 쓰는 난도 있다. 아이는 물론이고 학부모에게 학교생활 가이드북과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이 행운아인 것일까.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구습의 경험을 해본 적 없다. 세월만큼이나 선생님들은 그렇게 바뀌었다. 10년 전, 30년 전 선생님이 아니다. ‘참교육’을 내세우는 교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아니다. 과거에 머물렀던 기억이 교사들을 불신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이제는 일부 교사의 일탈을 일부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선생님들을 흘겨보고 있다. 교원평가제, 교장공모제, 학교별 성적공개 등을 통해 오히려 옥죄어 간다. 최근 배달된 가정통신문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감사의 달이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있으니 물품을 보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교사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과자를 가져가 나눠먹는, 지난주 미국의 ‘스승감사주간’과 너무 다르다.

 교사들은 바뀌었는데 학부모들이 바뀌지 않아 문제다. 청개구리처럼 지각없이 반대로 새겨듣는다. 학교에 찾아오지 말라면 꼭 오라는 말로, 물품을 보내지 말라면 더 큰 물품을 보내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과거에 사로잡힌 의식이 선생님들의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학부모들이여! 이제 선생님들이 가슴을 펴도록 해 드리자. 모든 선생님께 마음속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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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oulette strategy 2010/08/15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기사

'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 펴내기까지 과정을 틈나는대로 연재해 볼 생각입니다.  책을 내려고 하는 기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 책은 전문가만 내는 게 아니다.

 책 내기란 어려운 듯 보이지만 쉽고, 쉬운듯 하면서도 어렵다. 책은 학식이 높거나 많이 배운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다면 책을 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서, 아빠로서 느낀 단상도 좋고, 취미활동을 하면서 모은 자료여도 좋다.
 요즘 트위터가 유행인데 트위터 기능을 하나하나 익히면서 익힌 요령과 좋은 트위터리안이 되기 위한 팁 등을 정리해도 훌륭한 책이 된다. 그런 뜻에서 책을 내기란 쉽다.
 막상 집필에 들어가면 챙겨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300쪽 가까운 책을 내려면 A4 100쪽 가량의 글을 써야 한다. 오랫동안 자료를 모아왔다면 쉽겠지만 글을 쓰고 글에 알맞는 사진이나 자료를 챙기고 교열·교정을 보고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신경쓸 일이 제법 많다.
 그래도 어떤 내용으로 책을 써봐야겠다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책 내기는 쉽다고 결론짓고 싶다.
 관건은 콘텐츠다. 무엇을 책 안에 담을지의 문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독자들이 궁금해 하고, 읽고 싶어할 걸 찾으면 된다. 바로 자기가 ‘이런 책이 있으면 좋을텐데…’ 하고 느낀게 있다면 그 것이 바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늘 독자였지 저자이지 않았지 않나. 우리 곁에서 이야기를 찾으면 된다.
 필자도 몇 년전만 하더라도 책은 학자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쓰는 걸로 오해했다. 우연한 기회에 덜컥 집필자 낙점을 승낙해「독서경영」(공저,2006년 위즈덤하우스)을 내면서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구나’라고 바뀌었다.
 콘텐츠는 아이디어다. 기사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기자들 세계에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 없다’는 말이 없다. 지금껏 어떤 기자도 다뤄보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의 기사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결국 과거 다뤄진 아이템이더라도 보는 시각과 방향을 달리하거나, 접근 방식을 달리하거나 포장 방식, 즉 글쓰기를 달리하면 좋은 기사가 된다. 장애인에 관한 기사는 무수히 많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접근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고, 매일 장애인과 접촉하는 인물의 생활을 밀착해서 들여다 봄으로써 애환을 그려내도 좋고, 안내견을 화자(話者)로 내세워 기사를 작성할 수도 있다.
 수많은 육아일기 책과 차별화를 꾀하려면 아이 시각에서 글을 써보는 것도 새롭게 읽힐 수 있다.
 기자생활을 함께 시작했으나 지금은 IT 전문가로서 길을 걷고 있는 동기가 있다. 그의 대학(한국외국어대) 같은 과 친구 중에 박영규라는 친구가 있다. 바로 1996년 출간돼 첫해 35만부가 팔렸고 누적 판매량 100만부를 넘은 ‘한권으로 읽은 조선왕조실록’의 저자다.
 역사학도들에게나 읽히던 실록을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서 역사 배우기 열풍에 일조한 베스트셀러이지 스테디셀러의 저자는 사실 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지 조선왕조실록을 쉽게 소개하면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록 전질을 구해 읽고 또 읽어서 아예 내용을 외워버렸다고 한다. 전체 내용을 알고 있으니 한권으로 축약하는 건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게다.
  요즘 기자들의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 속보성으로 승부하던 시절은 끝났다. 기자들은 이제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신문도 종이신문을 파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콘텐츠 공급회사를 지향해야 한다. 기사도 생산하고 책도 펴내고 동영상도 만들어 내고 강연도 하고...지적재산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 후배 중에 분쟁지역에 관심을 두고 취재해 온 기자가 있다. 그 기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지역,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지역 등을 취재해 기사화하고 기사로 담지 못한 내용은 블로그로, 또 더 긴 호흡의 책으로 엮어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새 인생을 개척하는 한인들의 삶을 취재해 장기기획물로 연재한 선배도 최근 글을 다듬어 책으로 묶어냈다.
 기자들은 누구보다 책을 내기에 적격이다. 우선 매일 취재아이템을 구상하고 그 아이템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지를 알고 있다. 기사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서 책에 담을 콘텐츠를 구상하고 어떻게 재료를 모아 글을 쓸 수 있을지로 치환하면 된다.
 기자는 일반인 보다 정보 접근에 훨씬 유리하다. 글을 잘 쓰는 일부를 제외하고 학자들의 난해한 문체가 아니라 쉽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 매일 그런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집필에 욕심이 있는 기자라면 평소 취재하면서 모은 자료와 취재수첩을 버리지 않고 꼼꼼히 기록해 놓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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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레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적힌 유명한 문구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는 낮에 날지 못한다. 황혼 무렵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역사의 기록이야말로 미네르바 부엉이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념과 감정의 찌꺼기를 걸러내기까지 세월이라는 약이 필요하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곳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였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자의 자세와 입장이라는 측면에서 묘한 중의적 암시를 던져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5월 23일)를 앞두고 2009년 상반기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지혜의 부엉이가 이제 우리 사회에 날아오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말지어진 ‘박연차 게이트’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박희준 외 4명, 글로벌콘텐츠)가 출간돼 이번주말 서점가에 배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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