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기자 시절 사회부 기획회의 때마다 선배들은 교육문제를 빼놓지 않았다. 회의는 늘 학교와 교사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술자리에서도 단골 얘깃거리였다. 밤늦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몰리는 학생들 얘기는 안쓰러웠다. 어떤 선배는 학원비를 벌려고 파출부로 나선 한 어머니의 사연을 소개하며 개탄했다. 학생 아빠가 기자임을 알면서도 촌지를 받는다는 다른 선배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공교육 시스템은 그렇게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학원 문을 두드리게 하는 현실
필자가 학부모가 된 지금도 공교육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대한 기대를 접고 직접 나섰다. 학부모의 경쟁력이 곧 아이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학부모도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 어머니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어느 학원이 좋고 어떤 영어책을 읽혀야 하며, 어느 경시대회에 내보내야 할지 끊임없이 정보를 얻어야 한다. 아버지들도 웬만한 수학학원, 영어학원 이름 정도는 알아야 ‘가정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아이를 입시경쟁에 내몰기보다 책을 더 읽히자’던 다짐을 제법 지켜 왔다. 변명하자면 요즘 초등학생 5학년생들이 푸는 수학 문제집을 보면 수준이 어지간하지가 않다. 주말 짬짬이 아빠가 봐줘서 될 일이 아니다. 아빠의 미국 연수생활 덕에 익힌 아이의 영어실력도 책과 CD만으로 더 이상 지탱해 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혼자 공부하기에 부족했던지 아이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학원 문을 두드렸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책을 집어드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 분량이 보통이 아니다. 아이 엄마는 여전히 도서관을 열심히 돌며 책을 빌려다 나르지만 반납 연기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무엇보다 눈다운 눈이 내렸을 때 시골 할머니댁에 내려보내 눈썰매도 타고 실컷 놀다 오게 해주지 못하는 것도 마음 아프다. 그나마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그만두어도 된다”는 말에 아직 ‘이상’ 반응이 없어 다행이다.
‘사회정의를 외치던 386세대가 학부모의 주류인데도 다 그런 걸 뭐!’ 대학교수로 있는 한 선배도 얼마 전 만났을 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안타까워했다.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찾으니 마음의 짐이 조금은 줄어든 듯하다. 그런데 학원 한번 가지 않은 중학생 딸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는 모 선배의 얘기가 고개를 숙이게 한다. “씩씩하게 키우는 게 최고”라면서 딸아이에게 축구를 시킨다고 거드는 후배가 야속하다. 그래 심지가 굳지 못한 걸 어쩌랴.
학부모들이 사교육 시장에 눈을 돌리는 건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에 학교 교육만으로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수준별로 가르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학교에서만 배운 실력으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간다는 건 엄두를 낼 수 없다. 학교 영어수업은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아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방과 후 영어교실도 이용해 봤지만 원어민 강사와 대화 시간이 별로 없다. 아이를 학교 교육에만 내맡기는 건 절대적 평준화 수준으로 떨어지게끔 내버려 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사교육에 짓눌려 생활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들은 스스로 학교 성적에 스트레스를 이미 받고 있는 터다. 새 짐을 얹어주면서까지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다. 학원 성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선행학습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맛보게 하는 정도로 여기고 있다. 사교육은 어디까지나 학교 공부를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다.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만두게 할 생각이 확고하다.
일그러진 학부모들의 자화상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들이 다 같은 심정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수학과 영어 공부가 아니라 독서와 여행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방학 때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며 우정과 추억을 쌓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사교육이 정작 자기 아이 문제로 다가왔을 때 별도리가 없는 이 땅의 학부모임을 깨닫게 된다. 이중적인 자신을 발견하고 느끼는 자괴심은 ‘사교육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