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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2년 이전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은 지금의 대서양을 죽음의 바다로 불렀다. 그들은 이 바다에 무서운 괴물들이 우글거려 지나가는 배를 바다 깊숙히 잡아당겨 침몰시킨다고 여겼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 일부와 대서양 일부에 걸쳐 그려진 점선까지가 당시 유럽인들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던 부분이다.

초창기 탐험시대와 정착을 위한 노력
 노스캐롤라이나 North Carolina 서쪽 산맥에 인디언이 지금 살고 있다. 이들은 한때 북미대륙에서 유일했던 거주인들의 후손이다. 백인들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국가를 만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백인의 대부분은 영국과 스코틀랜드, 독일에서 왔다. 일부는 아일랜드, 스위스, 프랑스, 그리고 다른 유럽국가에서 건너왔다.
 이름 중에 노스캐롤라이나 초기 역사를 알려주는 이름이 많다. Smith와 Jones, Brown은 영국 이름이다. Cambell이나 McNeil ,McDonald은 스콜트랜드,  Kelly와 O'Conor는 아일랜드식 이름이다. Schenk와 Fries는 독일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지금의 Scotland County는 스코트랜드 사람들이 정착했던 곳이다. 동남쪽의 도시 New Bern은 스위스에 있는 도시 이름을 딴 것이다. Cherokee와 Catawba, Swannanoa와 같은 이름은 인디언 이름에서 비롯됐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것이 여러 나라에서 건너왔다. 밀이나 귀리, 호밀 같은 곡물은 유럽에서 전래됐고 Jersey와 Guernsey 젖소는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닌 영국 섬들에서 건너온 것이다.
 사람들은 왜 유럽의 고향을 떠나 신대륙으로 왔을까? 앞으로 여러분이 읽을 이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중요한 내용들이다.

1.탐험의 시대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을 찾아 나섰다가 우연찮게 미대륙을 발견한 걸 아는지? 노스캐롤라이나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들이 프랑스인과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건? 왜 그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국가로 오게 됐을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미지의 세계  1492년 이전까지도 유럽인들은 세계에 대해 별로 알지 못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지중해와 아시아 대륙의 일부 경계까지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바다 건너 서쪽 멀리 새로운 대륙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서양에 무서운 괴물들이 살고 있어서 그 곳을 지나는 배들을 침몰시켜 버린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 곳을 어둠의 바다 Sea of Darkness라고 불렀다. 또 그렇게 멀리까지 항해에 나설 용기를 지닌 뱃사람도 드물었다.
 일부 지식인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너무 멀리 항해에 나섰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것이라고 여겼다. 사람들이 바다 저 편에 무엇이 있을지 찾아 나설 생각을 못한 건 너무도 당연했다.

 탐험의 기운 1492년(*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 이전 인간이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하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침반과 천문관측기계가 발명됐고 지도와 해도가 더욱 정교해 졌다. 이제 사람들은 보다 멀리 항해하더라도 이전처럼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됐다. 먼 바다까지 나갔다가 안전하게 돌아오고 무서운 괴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죽음의 바다에 대한 공포심도 점차 사라졌다. 동시에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탐험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많은 것도 만들기 시작했다. 수백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작은 농장에 살면서 거의 노예처럼 대지주를 위해 일하면서 살아왔다. 1492년 이전까지 그들 중 상당수가 자유의 몸이 되었고 스스로 생활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상당수는 농부들이 기른 양의 털로 모직을 짰다. 일부는 곡물을 찧어 만든 가루로 빵을 구워 내다 팔았다. 또 그들은 가죽과 금속, 천을 이용해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런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 들었다. 그들은 곡식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대신 자기가 일해 번 돈으로 그것을 사서 썼다. 유럽에서는 이전보다 곡물과 수제품을 사고 파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더불어 더욱 많은 화폐가 유통되었다. 사람들은 고객과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한 탐험에 나서게 됐다.

국가 통합 사람들은 이제 보다 힘있고 좋은 정부를 갖기를 원했다. 그들은 장원 manors으로 불리는 넓은 농지에서 작은 그룹을 지어 살았다. 원의 영주는 봉신(封臣)의 노동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때때로 이 그룹 간에 다툼이 있었고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제 소그룹 간에 싸움을 중단하고 하나의 나라를 통합해 강력한 권한을 가진 왕의 지배를 받는다면 모든 이들이 통행과 산업을 안전하고 유익하게 영위해 나갈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력한 국가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탐험의 시대 이러한 변화들의 결과로 새로운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보다 많은 새로운 것을 듣고 보았다. 당시 새로운 호기심들이 잇따라 생겼으며 사람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특히 이 시기 인쇄기가 개발됨으로써 수많은 책이 인쇄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당시까지 경험하지 못한 머나먼 지구 반대편에 대해 듣고 읽을 수 있게 됐다. 그 곳에 가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들이 싹텄다.
 이 시기는 무역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희망, 그리고 새로운 대륙에 대한 관심이 제기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북미대륙이 이 시기-즉, 대발견의 시기-에 이뤄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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